EU 배터리 여권 2027년 2월 의무화…한국 산업계 디지털 전환 압박
유럽연합(EU)이 순환경제 전환을 위한 핵심 법안들을 잇따라 시행하며 한국 산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배터리 규정,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PPWR),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 등은 한국 기업들의 생산 및 수출 전략 전반에 걸친 변화를 요구한다.
EU 배터리 규정(Regulation (EU) 2023/1542)에 따라 2027년 2월 18일부터 EU 시장에 출시되는 2kWh 초과 산업용 배터리 및 전기차 배터리에는 '디지털 배터리 여권(Digital Battery Passport)'이 의무적으로 적용된다. 이 여권은 QR 코드를 통해 접근 가능한 전자 기록으로, 배터리의 탄소 발자국, 재료 구성, 성능 이력 등 전 생애주기 데이터를 담게 된다.
배터리 규정은 재생원료 사용 목표도 명시하고 있다. 2028년 8월 18일부터 코발트, 납, 리튬, 니켈을 활성 물질로 포함하는 2kWh 초과 산업용 배터리는 각 재료의 회수된 비율을 명시한 문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는 2031년까지의 규제 준수를 위해 현재의 셀 공급망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U 집행위원회는 2026년 7월 14일 휴대용 배터리 교체 예외 조항을 확대하는 위임법을 채택했다. 이 위임법은 독립적인 전문가가 배터리를 제거하고 교체할 수 있는 제품 범주를 넓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유럽의회 또는 이사회의 이의 제기 기간을 거쳐 관보에 게재된 후 20일째 되는 날 발효될 예정이다.
포장 및 포장 폐기물 규정(PPWR, Regulation (EU) 2025/40)은 2026년 8월 12일부터 대부분의 규정이 시행되며,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이 규정은 포장재의 설계부터 제조, 유통, 소비, 폐기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를 관리하며, 유해물질 사용을 최소화하고 과불화화합물(PFAS) 함량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식품 접촉용 포장재의 시장 출시를 금지한다.
EU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는 제조업자는 적합성 평가를 수행하고 기술 문서(TD) 및 적합성 선언서(DoC)를 작성해야 한다. 수입업자는 제조업자의 의무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DoC 사본을 보관해야 하며, 2028년 8월 12일부터는 포장재질 구성에 관한 정보를 담은 라벨링 의무가 적용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0월 20일 'EU 포장재 규제 대응 중소기업 간담회'를 개최하여 국내 중소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청취하고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중기부는 포장재 공급사로부터 유해물질 함유 정보 확보의 어려움, 시험·분석 비용 부담, 영문 기술문서 및 적합성 선언서 작성 애로 등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진단, 시험평가, 기술문서 작성, EU 대리인 선임 등 PPWR 대응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 Regulation (EU) 2024/1781)은 2026년부터 미판매 의류 및 신발의 폐기를 금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규제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ESPR은 제품의 설계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를 환경친화적으로 관리하며, 디지털 제품 여권(DPP) 도입을 통해 소비자와 규제 당국에 투명한 생애주기 데이터를 제공할 계획이다.
ESPR은 철강(2026년), 섬유, 타이어, 알루미늄(2027년), 가구, 매트리스(2028년) 등 우선 적용 품목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규제 대상 기업은 에코디자인 요건, 디지털 제품 여권, 미판매 제품 폐기 금지, 제품 라벨, CE 인증 취득 등을 준수해야 한다.
EU는 2026년부터 과학적 검증 없이 제품에 '친환경적', '생분해성', '에코', '기후 중립' 등 모호한 친환경 표시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녹색 전환을 위한 소비자 권리 강화 지침'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는 2020년 EU 집행위원회 조사에서 EU 내 친환경 광고의 53.3%가 모호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40%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담고 있었던 것에 따른 조치다.
한국 정부는 EU의 산업가속화법(IAA) 적용 과정에서 한국산 부품 및 최종 조립 제품을 EU산과 동등하게 대우해 줄 것을 요청하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철강·알루미늄 하류 제품 확대 적용 품목을 최소화하고 충분한 전환 기간을 부여해 국내 기업의 규제 부담을 줄여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또한, 한국 검증기관도 EU 역내 기관과 차별 없이 신속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은 10월 19일부터 20일까지 '2026 대한민국 순환경제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EU의 4대 환경규제 최신 동향과 국내 산업계의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생기원은 국내 기업의 탄소중립 전환과 규제 대응을 위한 기술 개발, 재생원료 인증, 순환경제 인프라 구축 등 다각적인 산업계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