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화일반

피란수도 부산, 한국 대기업 성장의 요람이었다

중앙저널업데이트 2026.07.19 20:00
중앙저널 디지털뉴스팀구독
기사 대표 사진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AI 생성 이미지입니다. 중앙저널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발상지이자 초기 성장을 이끈 요람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란의 혼란 속에서 풍부한 노동력과 해외 교역이 용이한 항만 입지를 바탕으로 제조업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는 한국전쟁 직전 부산에서 '럭키크림'을 생산하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은 깨지기 쉬운 화장품 유리병 뚜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국내에 생소했던 플라스틱 소재에 주목했다. 미국에서 사출성형기를 도입해 플라스틱 뚜껑을 제작하는 데 성공한 락희화학은 부산진구 부전동과 연지동 공장을 중심으로 국내 최초의 합성수지 성형제품과 튜브형 치약을 잇따라 개발하며 한국 플라스틱 산업의 문을 열었다.

삼성그룹 역시 피란수도 부산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이동한 이병철 회장은 1951년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설립해 고철 수출과 설탕·비료 수입으로 자금을 모았다. 이후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설탕의 국산화를 위해 1953년 부산진구 전포동에 국내 최초의 설탕공장인 제일제당을 설립하고 같은 해 11월 첫 흰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산 서면 일대는 이들 대기업의 모태 공장이 밀집한 지역 경제의 중심지였다. 부산시가 발간한 구술자료에 따르면 서면 일대는 공장과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피란민이 대거 몰려들며 활기를 띠었다. 전쟁을 거치며 부산의 인구는 1949년 약 47만 명에서 1955년 100만 명 이상으로 급증해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이후 산업 구조가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전환되고 기업 규모가 확장되면서 이들 모태 기업은 점차 부산을 떠났다. 석유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락희화학은 1969년 본점을 서울로 이전했고, 제일제당 역시 생산시설을 인천과 경기 등지로 넓히며 2000년대 중반에 부산 공장을 경남 양산으로 이전했다.

그럼에도 삼진어묵, 협성해운, 동성화학 등 부산에서 출발한 중견·중소기업들은 지역에 남아 기반을 유지했다. 또한 1970~80년대에는 사상공단을 중심으로 신발, 섬유, 기계 산업 등이 번창하며 대우실업과 국제상사 등이 대규모 고용을 창출해 부산 제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전성현 동아대 교수는 중앙일보를 통해 한국전쟁기 부산으로 유입된 피란민들의 노동력과 대기업의 창업이 결합해 산업 기반이 구축됐다며, 피란민들이 제조와 항만 현장에서 활약하고 물자를 유통하며 전후 경제를 재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 부산# 피란수도# 한국전쟁# LG화학# 제일제당# 산업유산# 지역경제# 1023일의 기록
0개 댓글 전체 보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