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산 철강 '제강 요건' 강화…원산지 검증으로 우회 수출 차단
미국 상무부가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우회 수출' 조사에 착수하며 한국 철강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조사는 백악관이 한국을 중국산 철강의 '불법 환적 위험 1등급 국가'로 지목한 이후 시작되었으며, 기존 반덤핑 관세 부과를 넘어선 강력한 보호무역 기조를 반영한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미국 상무부는 '제강 요건(melt and pour requirement)'을 강화하여 철강 제품의 원산지 검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철강 생산의 초기 단계인 조강(粗鋼) 생산부터 원산지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중국산 철강의 미국 유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미국의 의도로 해석된다.
조사 절차는 이해관계인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시작되며, 조사 개시가 관보에 게재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조사 대상 품목 생산자 등에게 'Quantity and Value (Q&V) 질의서'가 발부되며, 상무부는 통상 14일 이내의 짧은 기간 내에 답변서 제출을 요구한다.
기업들은 이 질의서에 성실히 답변해야 하며, 협조하지 않을 경우 불리한 가용 정보(Adverse Facts Available, AFA)가 적용되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AFA가 적용된 기업은 우회 방지 조치 면제를 위한 인증 절차 이용이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신김 법률사무소는 설명했다.
조사 개시 통지일로부터 150일 이내에 예비 판정이 내려지며, 긍정 판정 시 잠정 조치로서 추정된 관세에 해당하는 현금 예치가 요구될 수 있다. 최종 판정은 조사 개시 통지일로부터 300일 이내(최대 365일까지 연장 가능)에 내려지며, 우회 수출이 긍정될 경우 기존의 반덤핑 관세 및 상계관세 부과 조치가 확장 적용된다.
한국 철강업계는 중국산 소재 사용 비중이 높은 만큼, 이번 조사에 대한 철저한 공급망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국내 철강재에 대해서도 조강국 기준 도입 등 미국의 강화된 규정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한국산 철강에는 관세 대신 수입 쿼터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2025년 3월 12일부로 한국 쿼터를 포함한 국가별 대체 약정 및 품목 제외 절차가 종료되었고, 2025년 6월 4일에는 관세율이 50%로 인상되었다.
2026년 4월 6일부터는 관세 부과 방식이 금속 함량 가치가 아닌 수입품 전체의 세관가치(full customs value)를 기준으로 개편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강력한 보호무역 기조에도 불구하고, 포트 로직스(PortLogics)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2026년 4월 39만 9852톤을 기록하며 2015년 2월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
이는 미국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따른 현지 철강 수요 폭발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철근 수출량은 2026년 1월부터 7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약 36배 증가했으며, H형강과 강관 수출도 크게 늘었다고 한국무역협회는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을 중국산 철강의 '불법 환적 위험 1등급 국가'로 지목하며 우회 수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수석고문은 한국이 고액 보조금을 받은 철강과 중국산 환적 철강을 미국에 쏟아붓고 있다고 비난하며 추가 무역 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건설 중인 제철소 프로젝트에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와 철강 업계는 미국의 무역 규제 움직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수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미국 철강업계와의 협력적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제3국 제품의 환적 거점이라는 오해를 해소하기 위한 투명하고 공정한 무역 시장 조성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국내 철강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철강 원산지 증명을 의무화하고, 수입 철강 제품의 '우회 덤핑' 방지 제도를 강화하는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업계의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