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산 철강 '우회 수출' 조사 장기화…도금강판 추가 관세 압박 가중
미국 상무부가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우회 수출' 조사에 착수하면서 한국 철강 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조사는 백악관이 한국을 중국산 철강의 '불법 환적 위험 1등급 국가'로 지목한 이후 시작된 것으로, 한국 철강사들은 '우회 수출'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한 원산지 증명 부담을 안게 됐다.
미국 상무부의 '우회 수출' 조사는 이해관계인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개시될 수 있으며, 조사 개시가 관보에 게재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이해관계인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이후 조사 대상 품목 생산자 등에게 '수량 및 가치(Quantity and Value, Q&V)' 질의서가 발부되며, 이를 바탕으로 조사 대상 기업이 선정되어 추가 질의서가 발부된다.
예비 판정은 조사 개시 통지일로부터 150일 이내에 내려지며, 긍정 판정 시 잠정 조치로서 추정된 관세에 해당하는 현금 예치가 요구될 수 있다. 최종 판정은 조사 개시 통지일로부터 300일 이내(최대 365일까지 연장 가능)에 내려지며, '우회 수출'이 긍정될 경우 기존의 반덤핑 관세 및 상계관세 부과 조치가 확장 적용된다.
미국 상무부는 조사 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불리한 가용 정보(Adverse Facts Available, AFA)를 적용하여 불이익을 줄 수 있으며, AFA를 적용받은 기업은 우회 방지 조치 면제를 위한 인증 절차 이용이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기업들에게 조사 협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은 지난 8월 발표한 보고서 'The Great Transshipment Scam'에서 중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전 세계 40개국 이상을 활용하는 '우회 수출' 망을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을 캐나다, 유럽연합, 인도, 이스라엘, 일본, 멕시코, 대만과 함께 '불법 환적 위험이 높은 1등급(Tier 1) 국가'로 분류했다.
미국철강협회(AISI)는 지난 9월 28일 한국산 철강 수입 급증을 문제 삼으며, 올해 7월 한국산 철근 등 장강류 수입이 14만 5,300톤으로 2024년 7월의 2만 2,100톤보다 약 6.6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수석고문은 지난 10월 6일 한국을 직접 거론하며 한국산 철강의 미국 수출이 지난해보다 두 배로 증가했다고 주장하고, 이는 중국산 철강의 '환적'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와 철강 업계는 미국의 이러한 무역 규제 움직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업종별 협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과 함께 민관 합동 대책회의 및 수입규제 실무 간담회를 개최하여 업종별 예상 피해 및 애로사항을 상시 점검하고 있다.
한국 철강사들은 미국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무역 장벽을 우회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지난 9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58억 달러(약 7조 8,000억 원) 규모의 전기로 기반 일관제철소인 '현대-포스코 루이지애나 스틸(HPLS)' 착공식을 열고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의 '우회 수출' 조사는 단순히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중국산 중간재 의존도가 높은 국내 수출 기업들에게 '중국산 부품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우회 수출'이 없음을 입증하기 위한 철저한 소명 노력과 함께,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 체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한편, 미국은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철강 제품과 철강 파생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2026년 4월 6일부터는 관세가 금속 함량 가치가 아니라 수입품 전체의 세관가치(full customs value)에 부과되고 있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르면 모든 철강 제품과 상당수 파생제품에는 50%, 일부 파생제품에는 25%의 추가 관세가 적용된다. 2025년 6월 4일에는 관세율이 50%로 인상되었으며, 이후 파생제품 적용 범위가 수차례 확대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국내 철강사들의 실적 회복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산 도금강판에 대한 반덤핑 재심 예비판정으로 추가 관세 위험이 커지고 있으며, 미국 상무부는 한국 업체가 원재료를 지나치게 싸게 사들였다고 보고 실제 지출한 비용보다 생산원가를 높게 계산하여 덤핑 판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중국의 철강 공급 과잉 문제가 원가 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철강 업계는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원산지 증명 강화와 함께 공급망 다변화 등 근본적인 체질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