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일원화 로드맵, 기존 면허자 진료권 조정 논의 본격화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의료일원화 10년 로드맵'이 의료계에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었다. 특히 기존 의료인의 면허를 침해하지 않고 미래 세대부터 통합하는 '선 학제 통합' 방안이 주목받는 가운데, 통합 교육 추진 과정에서 기존 면허자의 진료 범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영석 의원의 로드맵은 2026년부터 2034년까지 6단계에 걸쳐 교육체계 통합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단계에서는 사회적 논의 기반을 구축하고, 2단계(2027~2028년)에서는 의료일원화 기본법 제정 검토와 함께 한의대·의대 기초의학 공동교육, 임상실습 상호개방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후 3단계(2029~2030년)에서는 시범대학을 지정해 6년제 통합교육과정을 구성하고 검증한다.
과거 의료일원화 논의는 197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이어졌으나, 기존 면허와 진료 범위, 교육체계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2015년 보건복지부가 의협과 한의협 등에 2030년까지 교육과정 및 면허제도를 통합하는 내용의 합의문 초안을 제시했으나, 기존 면허자 처리 방안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 로드맵은 기존 의료인의 면허를 존중하면서 미래 세대부터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과거 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는 모두 의료일원화 논의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추진 방식과 선결 과제를 놓고는 여전히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의협은 학제 일원화 또는 교육 일원화를 통한 중장기적인 일원화에 참여할 의향이 있지만, 통합 교육은 단순히 일부 과목을 이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대의학에 요구되는 근거 중심의 교육과 국제적 수준의 의학교육을 충족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반면 한의협은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장점을 살리는 '더하는 통합'을 주장하며, 기존 한의사의 역할 보장과 진단기기 사용 문제 해결, 환자·시민단체의 참여 등을 요구했다. 특히 한의협은 지난 수십 년간 의료일원화 논의가 한의사의 진단기기 사용 문제를 뒤로 미루는 이유로 활용돼 왔다고 지적하며, 논의 시작 단계부터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 학제 통합' 방식은 미래 세대부터 통합 교육을 통해 새로운 면허 체계를 적용하되, 기존 의료인의 면허는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통합 교육이 추진되는 동안 기존 의사와 한의사의 진료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향후 협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의료일원화와 맞물린 또 다른 쟁점이다.
한의계는 환자의 진료 편의와 진단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X-ray와 초음파 등 의료기기 사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기기의 조작뿐 아니라 검사 결과의 판독과 진단에도 전문적인 의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는 법적 분쟁으로도 이어졌으며, 의협과 한의협 사이에 법원 판단에 대한 해석 차이도 존재한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최근 한의계의 피부미용·성형 분야 진출에 대해서도 의료인 면허 범위를 벗어난 시술이 확산될 수 있다며 정부의 관리와 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기존 면허자의 진료권 조정 문제가 단순히 진단기기 사용에 국한되지 않고, 의료 행위 전반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의료일원화 논의는 의협과 한의협 사이의 갈등을 넘어 의료계 내부에서도 통합 논의의 출발 조건과 대표성을 둘러싼 이견을 드러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한방 의료행위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학제 통합을 앞세운 추진 방식에 반대하고 나섰다. 또한, 의협 전 법제이사의 발언에 대한 사전 승인과 회원 의견 수렴 여부를 공개하라고 의협에 요구하는 등, 조건부 참여 의사가 실제 통합 추진에 대한 동의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의료일원화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현안인 만큼, 의료계 내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폭넓은 논의와 합의가 필수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하고 연구 용역을 통해 각 직역의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