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디지털 제품 여권, 전자제품 전반 확대…한국 기업 제조물 책임 리스크 커진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제품 여권(DPP) 의무화가 2026년 10월 1일부터 전자제품 전반으로 확대 적용된다. 이는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에 따라 제품의 전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 형태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당초 2027년으로 예상되었던 전자제품 전반에 대한 DPP 의무화 시행일이 앞당겨지면서 한국 수출 기업들의 대응이 시급해졌다.
디지털 제품 여권은 원자재 조달부터 생산, 유통, 사용, 폐기 및 재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의 환경 및 지속가능성 정보를 담는다. EU는 이를 통해 소비자가 제품의 환경적 가치를 명확히 파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제조업체는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재료 구성, 탄소 발자국, 유지 보수 정보 등 핵심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기계 판독 가능한 DPP 데이터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야 한다.
DPP에 포함될 정보는 제품 식별, 제조업체 및 경제 운영자 정보, 재료 및 구성, 지속가능성과 환경적 특성, 수리 및 유지보수, 재활용된 콘텐츠, 우려되는 물질, 제품 수명 종료 및 재활용 정보, 규정 준수 관련 문서 등이다. 다만, 모든 제품에 적용되는 단일한 DPP 템플릿은 없으며, 필요한 정보, 데이터 저장 매체, 식별 수준, 접근 권한 및 보존 기간은 해당 제품 범주에 적용되는 법률에 따라 결정된다.
이번 DPP 의무화 확대는 한국 수출 기업들에게 정보 공개 의무 강화와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 증대라는 과제를 안긴다. 제품의 전 생애주기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므로, 국내 기업들은 제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내구성, 수리 가능성, 재활용 가능성 등 에코디자인 요건을 반영해야 한다. 또한 공급망 전반의 환경 데이터 수집 및 DPP 구축을 위한 내부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2026년 10월 25일 기준 ESPR이 자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29.7%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 기업들은 '전문인력 부족'(65.3%)과 '친환경 소재 개발에 따른 비용 증가'(57.4%)를 주요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정부와 유관기관은 국내 기업의 순환경제 전환과 규제 대응을 위한 기술 개발, 재생원료 인증, 순환경제 인프라 구축 등 다각적인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2026년 10월 19일부터 이틀간 '2026 대한민국 순환경제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글로벌 규제 동향과 국내 제도 추진 방안을 공유했다.
특히 DPP는 단순한 행정 규정 준수를 넘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제조물 책임 소송의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26년 12월 시행되는 'EU 신제조물책임지침'은 제조물 책임을 청구하는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낮추는 결함 추정 원칙을 도입했다.
만일 DPP 규정이 '필수 제품 안전성 요건'으로 인정되고, 여권 데이터에 하자가 있다면 제조물의 결함이 추정될 수 있다. 이는 시장 출시 단계의 경미한 과태료 부과 수준을 넘어, 사고 발생 시 최대 25년간 EU 전역의 집단 소송으로 확산될 수 있는 무거운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 따라서 국내 전자제품 및 소재 기업들은 데이터 체계 정비, 공급 계약 재정비, 사고 대응 매뉴얼 마련 등을 병행해야 한다.
부산의 한 청년기업은 EU의 DPP 기술을 국내 최초로 상용화하고 이탈리아 명품 기업 돌체앤가바나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기업의 유럽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는 지역 청년기업의 인공지능 기술력과 도전 정신이 만들어낸 결과로 평가된다.
결론적으로 EU의 디지털 제품 여권 확대는 한국 수출 기업들에게 새로운 규제 환경을 조성하며, 단순한 정보 공개를 넘어 제조물 책임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기업들은 선제적인 대응과 기술 혁신을 통해 변화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