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조정제도 본격화 10개월, 한국 수출 기업 '탄소 데이터' 확보 비상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올해 1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된 지 10개월이 지나면서, 한국 수출 기업들은 내년부터 시작될 CBAM 인증서 구매 의무에 대비해 탄소 배출량 데이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U 집행위원회가 최근 3분기 CBAM 인증서 가격을 톤당 82.32유로로 발표하며 2분기 대비 약 9.4% 상승한 가운데, 정확한 탄소 배출량 산정 및 검증이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CBAM은 EU 역내로 수입되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탄소집약 품목에 대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2월까지는 전환 기간으로 분기별 보고 의무만 있었으나, 2026년 1월 1일부터는 확정 기간에 돌입하여 연 1회 CBAM 인증서를 구매하고 데이터 검증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이 인증서 가격은 EU 배출권거래제(EU-ETS)의 주간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되며, EU 수입업자가 인증서를 구매해야 하지만 실질적인 비용 부담은 국내 수출 기업에 전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고 철강, 알루미늄 등 CBAM 대상 품목의 대EU 수출 비중이 높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EU의 역내 무상할당률이 0%가 되는 2034년까지 대EU 수출 가격은 작년 대비 최대 18.2% 상승하고 수출 물량은 최대 17.9%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CBAM 규정은 실제 데이터를 통한 탄소 배출량 산정을 원칙으로 하며, 실제 데이터 확보가 어려울 경우 EU가 제공하는 기본값(default value)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값을 적용할 경우 EU 역내 최하위 그룹의 배출량을 적용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실제 탄소 배출량보다 많아져 CBAM 인증서 구매 부담이 증가하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실제 배출량 산정 및 검증 체계 구축이 기업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는 핵심 과제입니다.
문제는 국내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대응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2024년 1월 31일까지였던 첫 분기별 보고서 제출 마감 기한이 기술적 문제로 2월 말까지 연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경우 보고서 제출 대상 기업의 10% 미만, 스웨덴은 11%만이 제출하는 등 EU 전반적으로 저조한 제출률을 보였습니다. EU 집행위원회는 제출된 보고서의 대부분이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상품과 관련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많은 기업이 CBAM 보고 대상인지조차 모르고 있거나, 보고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실제로 작년 9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제조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EU CBAM을 잘 알고 있다고 답변한 비율은 21.7%에 불과했습니다. CBAM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EU 수출 기업의 54.9%가 '특별한 대응 계획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CBAM 헬프데스크에 접수된 상담 건수 대부분이 중소기업의 탄소 배출량 산정법, 절차, 대상 등에 대한 문의였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또한,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의 탄소 배출량 산정 단위는 생산시설 또는 사업장인 반면, CBAM은 제품 단위로 배출량을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은 현행 K-ETS와는 다른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부는 국내 기업의 CBAM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 관세청 등 관계 부처는 합동 설명회를 개최하여 최신 CBAM 이행 규정과 실무 대응 방안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는 수출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탄소 배출량 측정 및 산정, EU-ETS 검증기관을 활용한 검증 보고서 발급 등 탄소 배출량 산정·검증 과정을 직접 지원하는 'CBAM 대응 인프라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탄소 배출량 산정 프로그램인 'CBAM-PASS'를 개발하여 중소기업에 무료 배포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EU의 CBAM 규정은 고정된 값이 아니라 이행 결과를 바탕으로 매년 적정성이 평가되고 필요시 조정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대응이 필요합니다. 특히 2027년 12월까지 배출량 산정에 사용하는 기본값이 재평가될 예정이며, 철강·알루미늄 하공정 약 180개 품목 등으로 적용 대상을 넓히는 개정안은 2028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 지원 프로그램 역시 EU 규정 변경에 제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운영 예산 확보와 전문 인력 유지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CBAM은 단기적인 규제 준수를 넘어 생산 공정의 탈탄소화, 친환경 소재 전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중장기 경영 전략과 연계하여 접근해야 할 과제입니다. 관련 제도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선제적 대응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작용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