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AI 활용 출판물 '인간 검증' 기준 구체화…계약서 명시로 독자 신뢰 확보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출판계가 AI 활용 출판물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에 나섰다. 지난 9월 29일 한국출판인회의를 포함한 12개 출판·저작자 단체는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을 발표했다. 이 원칙은 AI 활용 출판물을 '인간 저작물', 'AI 보조 저작물', 'AI 생성 출판물'의 세 단계로 나누고 인간의 통제와 검증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번 'AI 사용 원칙'의 핵심은 AI가 출판 과정에 얼마나 관여했는지에 따라 출판물을 분류하고, 특히 인간의 통제와 검증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중요하게 본다는 점이다. 덕성여대 AI DynaInfo 연구소 박정인 교수는 "분류의 핵심은 AI가 몇 퍼센트의 문장을 생성했는지가 아니라 인간이 충분히 검토하고 수정했는지, 최종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인간이 질 수 있는지"라고 설명했다.
1단계 '인간 저작물'은 인간이 창작을 주도하고 AI는 단순 교정·교열 등 보조적인 용도로만 사용한 경우로, 별도의 AI 관련 표시는 하지 않아도 된다. 2단계 'AI 보조 저작물'은 인간이 창작한 내용을 AI로 보완했거나 AI가 생성한 내용을 활용했더라도 최종적으로 인간이 충분한 통제와 검증을 거친 저작물이며, 이 단계부터는 AI 활용 사실을 표시하도록 권고한다.
3단계 'AI 생성 출판물'은 AI가 생성한 내용에 대해 인간의 실질적인 통제와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출판물을 의미하며, '저작물' 대신 '출판물'로 표기하고 AI 활용 사실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이는 독자들이 출판물 구매 및 이용 결정 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원칙에는 저작자가 원고를 출판사에 전달할 때 AI 활용 단계와 범위를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출판사는 저작자와 AI 사용 범위를 상호 합의하여 출판 계약서에 명시하도록 권고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정책위원장인 김보경 지와인 대표는 "투명성 표시 제도가 책임과 공정한 보상으로 가는 길을 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AI 학습 데이터에 대한 정당한 보상 기준 마련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26년 2월 「생성형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를 발간했으나, 이는 유권해석이 아닌 참고자료이며 실제 공정이용 여부는 법원이 최종 판단하게 된다.
출판계는 AI 학습 데이터 이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와 이용 목적에 따른 정당한 보상 기준 마련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정진근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출판단체 중심의 공동협상 체계, 목적별 표준 라이선스, ISBN 기반 메타데이터 구축이 실질적인 대안임을 강조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이번 포럼에서 제시된 표시, 계약, 권리정보 관리 방안을 출판 현장의 실천 과제로 구체화할 계획이다. 또한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 출판 환경 조성을 위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및 저작권법 개정 등 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은 지난 9월 29일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출판·AI 정책포럼'에서 발표되었다. 이 포럼은 지난 4월 '딸깍 도서' 논란 이후 AI 활용 기준과 대응 체계 마련 요구가 커지면서 개최된 긴급 포럼의 후속 성격으로, 5개월간의 연구와 논의 끝에 마련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