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AI 활용 출판물 '3단계 표시제' 도입…독자 신뢰 확보 방안 주목
인공지능(AI) 기술이 출판 분야에 확산되면서 AI 활용 출판물의 투명성과 저작권 보호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출판인회의를 포함한 12개 출판 및 저작자 단체가 지난 9월 29일 '독자를 위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을 발표하며 자율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이 원칙은 AI 활용 출판물을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독자들이 AI 활용 여부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표시를 권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새롭게 발표된 'AI 사용 원칙'은 총 5장 20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AI를 창작을 돕는 도구로 정의하고 최종적인 창작 주체와 책임은 인간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출판물에 AI 활용 여부를 명확히 밝히는 '3단계 표시제'를 제안하여 독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3단계 표시제'의 첫 단계인 '인간 저작물'은 AI를 교정·교열, 개요 작성, 목차 구성 등 보조적인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사용한 경우를 포함하며, 별도의 AI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단계인 'AI 보조 저작물'은 인간이 창작한 내용을 AI로 보완했거나 AI가 생성한 내용을 활용했더라도 인간이 충분히 통제하고 검증하여 완성한 저작물을 의미하며, 이 경우 AI 활용 사실을 표시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인 'AI 생성 출판물'은 AI가 생성한 내용에 대해 인간의 실질적인 통제와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출판물을 지칭합니다. 인간의 창작성이 없는 순수 AI 생성물은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저작물' 대신 '출판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AI 활용 사실을 반드시 표시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AI 활용 표시 위치는 종이책의 경우 표지 안쪽, 판권지, 일러두기 면 중 한 곳 이상에 명시하며, 전자책은 판권 정보에 AI 활용 여부를 표시합니다. 오디오북의 경우 재생 시작 부분에 음성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권장하여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에 적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원칙에는 출판물이 AI 학습에 이용될 경우 권리자의 동의와 정당한 보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저작자가 출판사에 AI 활용 단계와 범위를 사전에 고지해야 하며, 의료, 법률, 투자, 아동, 교육 등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분야에서는 사람의 검수를 더욱 강화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이번 'AI 사용 원칙'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관련 제도가 정비되기 전에 출판계가 스스로 현장의 약속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출판인회의 홍영완 회장은 연합뉴스 보도를 통해 "AI 기술을 배척하거나 AI 생성물에 주홍 글씨를 새기려는 것이 아니라, 출판과 AI가 공존하는 가운데 독자가 안심하고 책을 고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출판인회의가 지난 7월 국내 출판사 188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출판사의 76.1%가 AI를 활용하거나 시험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85.1%는 'AI가 활용된 출판물을 식별하고 관리할 체계가 필요하다'고 답해 AI 활용이 이미 출판 현장에서 일상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출판단체 중심의 공동 협상 체계, 목적별 표준 라이선스, ISBN 기반 메타데이터 구축이 AI 기업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제시되었습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이번 포럼에서 제시된 표시, 계약, 권리 정보 관리 방안을 출판 현장의 실천 과제로 구체화하고,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 출판 환경 조성을 위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및 저작권법 개정 등 후속 논의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또한 AI 저작권 관련 정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6년 2월 '생성형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 최종본을 발표하여 AI 학습 단계에서의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판단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2025년 3월에는 '2025 인공지능-저작권 제도개선 협의체'를 출범시켜 AI 저작권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AI 시대에 출판 생태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독자와 창작자 모두에게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으로 평가됩니다. 출판계의 자율적인 노력과 정부의 정책 지원이 결합되어 AI와 인간 창작이 공존하는 건강한 출판 생태계가 구축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