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한국 의료장비 지원 '모니터링' 거부…유엔 제재 면제 유효기간 내 해법 주목
한국 정부가 북한 평양 강동군병원에 93억 원 규모의 의료장비 지원을 추진하는 가운데, 북한이 한국의 '모니터링' 방식을 거부하며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의 담화 이후 한국 정부는 유엔 제재 면제 유효기간 만료 전까지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모니터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5월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로부터 평양 강동군병원에 166종 1,431개, 총 675만 달러(약 93억 원) 상당의 의료장비 지원에 대한 제재 면제를 승인받았다. 여기에는 고압멸균기, 구급차, 초저온 냉동고,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 등 유엔 제재 대상 품목 41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정부는 제재 면제 요청서에 승인일로부터 6개월 이내인 11월 22일까지 물품을 발송하겠다는 잠정 계획을 명시했으며, 현대아산을 운송사로 선정해 인천항에서 중국 단둥을 거쳐 북한 남포항으로 반입하는 경로까지 보고했다. 그러나 김여정 총무부장은 10월 8일 담화를 통해 한국 정부의 의료장비 지원 계획을 "우리 국가에 대한 모독이고 변종된 정치적 도발"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김여정 총무부장은 특히 통일부가 제재 면제 신청서에 북한의 '의약품 및 의료 장비 부족과 보건 상황 악화'를 지원 필요성으로 언급한 것을 문제 삼으며 "너절한 물건짝들"이라고 폄하했다. 이는 북한이 한국의 인도적 지원 자체를 '주권 침해'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지원의 본질적 목적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을 드러냈다.
한국 정부는 지원 물품이 본래 목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 외 용도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직원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 등 총 6명으로 합동 모니터링팀을 구성해 북한 현지에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이는 유엔 제재의 틀 안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북한 당국이 한국인 검사관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정부는 중국이나 몽골 등 제3국 인력을 활용하거나 화상 연결을 통한 비대면 점검을 실시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은 과거에도 인도적 지원 물자에 대한 현장 모니터링에 대해 거부감을 보여왔으며, 이번 김여정 총무부장의 담화로 인해 현장 모니터링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지난 4월 30일 종료된 점도 한국 정부의 모니터링 계획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 패널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에 따라 창설되어,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 의심되는 상황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연 2회 보고서를 발간하며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임기 연장 결의안이 부결되면서 전문가 패널은 15년 만에 해체되었다. 유엔은 전문가 패널이 사라지더라도 대북제재위원회는 존속하며 제재 체제 이행을 감독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문가 패널만큼 정기적이고 포괄적인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기구가 없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행 감시 체계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장비 지원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모니터링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독립적인 감시 기구의 부재는 북한이 모니터링을 더욱 거부할 명분을 제공하거나, 한국 정부가 모니터링의 실효성을 입증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25년을 '보건혁명의 원년'으로 설정하고 보건의료 부문 개건·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지방발전 20X10 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평양 강동군병원 준공식에 참석하며 지방 병원 현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강동군병원은 김 위원장이 추진하는 지방 병원 건설의 첫 사례로 꼽힌다.
북한의 의료시설 수는 적지 않지만, 의료장비와 의약품 부족이 심각하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장기간 국경 봉쇄는 보건의료 체계의 취약성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의료장비 지원은 북한 주민들의 필수 의료 서비스 접근성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일부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대북 인도적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실제 사업 규모와 운송 시기 등은 북한과의 협의 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재 면제 유효기간인 내년 2월까지 북한이 지원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사업 계획을 재검토하고 제재 면제 기간 연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북한이 '보건혁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의료장비 지원을 최종적으로 수용할지, 그리고 모니터링 방식에 대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