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한국 정부의 93억 원 의료장비 지원 제안 공식 거부
한국 정부가 북한 평양 강동군 병원에 93억 원 규모의 의료장비를 지원하려던 계획이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공식 거부 담화로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10월 8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국 정부의 지원 제안을 '국가 모독이자 변종된 정치적 도발'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지난 5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해당 사업에 대한 제재 면제 승인을 받은 지 5개월여 만에 나온 북한의 공식 입장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담화에서 한국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제재 면제 요청서에 북한의 '의약품 및 의료 장비 부족과 보건 상황 악화'를 지원 필요성으로 명시한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를 '우리 국가에 대한 모독이고 변종된 정치적 도발'이자 '우리의 국법을 거스르는 엄중한 주권 침해행위'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여정 부부장은 이번 지원 계획이 최근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건을 덮으려는 '지뢰 폭발 자작 광대극의 연속편'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북한의 강경한 입장은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평화적 공존' 기조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가 여전히 경색 국면임을 보여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헌법에 명기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올해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도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면서 다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을 통해 북한 평양 강동군 병원에 166종 1,431개 품목, 총 675만 달러(약 93억 원) 규모의 의료장비를 지원할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고압멸균기, 구급차, 초저온 냉동고, 소변 분석기,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 등 유엔 제재 대상 품목 41개가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5월 22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로부터 제재 면제 승인을 받았다.
정부는 제재 면제 승인일로부터 6개월 이내인 11월 22일까지 의료장비를 선박을 통해 북한 남포항으로 운송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며, 운송사로는 현대아산을 잠정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지원 계획은 북한과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통일부는 이번 사업이 북한과 협의하기 전 단계의 사전 준비안일 뿐이며, 인도적 지원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추진한다는 것이 역대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로 우리 장병이 다친 상황에서 대북 지원을 추진하는 것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한 의료장비가 군수용으로 전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북한의 공식적인 거부 의사 표명은 한국 정부의 지원 계획에 큰 차질을 가져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과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재 면제 유효 기간인 9개월(내년 2월)이 지나면 다시 유엔과 협의해 제재 면제 연장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남북 간 대화 채널이 단절된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마저도 추진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북한의 공식 거부로 인해 한국 정부의 대북 의료장비 지원 계획은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태는 남북관계의 경색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시사하며, 인도적 지원을 통한 관계 개선 시도마저도 난항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거부 입장과 관련하여 추가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